<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얼핏 봐도 책 두께가 상당히 얇아 보인다. 나는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건 맞지만 그를 깊게 이해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할 거 같다. 2년 전에 출간한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너무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 한편의 소설만 가지고 싸잡아서 매도하는 건 아니며 이전부터 조금씩 하루키의 글에 의구심을 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는 건 하루키란 이름이 주는 힘 때문이다. 이를 부인하진 못한다.
오늘 리뷰하는 <버스데이 걸>은 작년 여름쯤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온라인 알라딘 서점에서 본 리뷰는 대부분 비판뿐이었는데 특이한 건 차지하는 비판의 본질은 내용보다 가격에 있다는 것이었다. 61p 짜리(그것도 절반이 일러스트) 책이 13000원이라... 나도 하루키 책을 사서 보는 편이나 이번만큼은 빌려보았다. 한 시간이면 다 읽고 생각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루키가 쓴 책이 아니었다면 과연 사서 읽을 사람이 있었겠냐는 궁금증이 남는 책이다. 이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 명료하다. (물론 독자는 다양하므로 각자 다를수있다.) 스무 살 생일날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 그리고 약 십수 년이 지나 그걸 회상하는 주인공.
스물이 되던 날 직원으로서 노인에게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답례로 소원 딱 한가지를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여 잠시 고민했던 아가씨. 당연히 문장 속에는 소원이 무엇이었는지와 그것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여부는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뜻밖의 소원을 말해 노인을 감탄케 하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성경의 <열왕기상> 3장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으로서 군사력도 구하지 않고 또 수(壽)도 아니하고 부(富)함도 구하지 않고 오직 선악을 분별할 지혜를 달라 하여 창조주의 마음을 감동케한 '솔로몬' 이에 비견될 바는 아니지만 주인공도 보통의 스무 살 아가씨가 비는 소원과 달라 노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여러분들은 스무 살 때 앞을 어떤 인생을 그리고 싶었으며 성인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는가 묻고자 하는 거 같다. 나 역시 되고싶은 인간상이 당연히 존재했고 서른이 넘는 지금도 존재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가진 생각과 천양지차이다. 이를 피력하자는건 이 리뷰에서 할 얘긴 못되는거 같다. 그러고나서 빠르게 글을 끝맺는데 다음 장에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은 스무 살 생일을 또렷이 기억한다며 '작가 후기'에 일러놓았다.
생일을 중요시하지 않는 나는 스무 살 생일 때 뭘 했는지 당최 기억나질 않는다. 솔직히 아직도 태어난 날이 각자에게 무엇이 그리도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생일은 주변인들로부터 선물을 당연스럽게 받아도 괜찮다고 다 같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전통 깊은 날?
물론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고 뭘 받았는지도 지금도 기억나는 게 몇 개 있지만 나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스무 살 그땐 정황상 내가 소속된 열심 내던 동아리의 선배와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던 거 같다. 그뿐이다. 생일과 소원을 접목시킨 글감은 흥미롭고 좋았지만 너무 빨리 마무리되었다. 단편 모음집에 한 에피소드만 빼놓은듯한 내 엄지보다 얇은 책으로 비싼 값을 받고자 한 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래서 첫 느낌은 중요한가 보다.
<상실의 시대>에서 받았던 여운이 내 안에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그거 하나 믿고 하루키를 매번 찾는 거 같다.책을 고르는 것도 극장에서 영화 고르는 것과 같아서 실패할 때가 있다. 늘 깨달음과 즐거움을 주진 않지만 분명 지금 읽은 문장들이 어딘가 내 안에 남아 언젠간 지혜로 발현될 것이라 근거 없는 믿음을 가져보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