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마다 문체도 필력도 각양각색이지만 내가 독서에 흥미를 붙인 이후로 접해본 분들 중에서는 하루키만큼 매력적으로 쓰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상실의 시대>, <어둠의 저편>, <1Q8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리뷰할 <개똥벌레> 또한 그렇다.
<개똥벌레>의 전반부는 사실 <상실의 시대>의 초반부를 그대로 가져왔고 중반부턴 단편 소설 모음집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 기숙사에 있었던 어느 남학생의 시시콜콜한 일의 배경을 필두로 지극히 평범한 내용으로 이어져 어찌 보면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하루키의 글이 늘 그렇듯 첫 장부터 흥미롭게 빨려 들어갈 듯이 읽어나갔다.
하루키는 오컬트적 요소가 있는 글을 쓸 때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땐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성의 늪으로 독자를 빠뜨리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거 같다. 기호가 각자 다르므로 누구에게나 호평 일색 일순 없겠지만 내가 그런 글에 유독 몰입이 잘 된다는 이유도 이를 뒷받침한다. 아주 평범한 글감 속에선 친구 사이에서 연애 감정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독자인 나의 옛 모습을 하나둘씩 건드리며 다듬어준다. 그리하여 내가 또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는 듯하다.
이는 서두에 밝혔듯 <상실의 시대>의 전반부만 가지고 말하는 것인데, 전반적으로 주인공들은 말수가 없는 편이고 대체적으로 상황 묘사가 많아 대화의 여백을 채우는 건 독자의 몫이다. 그렇게 읽다 보면 영화 한 편에 푹 빠진듯한 여운으로 헤어 나오기 힘들지만 그 이유가 비단 몰입감 때문만은 아니다. 작중의 죽은 친구에 대한 주인공의 그리움과 또 그 친구의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교차된 그의 모습들이 마치 나에게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묻는 느낌이 커서였다. 하루키는 이때 적절하게 끊었다. 후반부까지 이어질 얘기는 <상실의 시대>를 리뷰할 때 써보겠다.
다음 수록작은 <헛간을 태우다>인데 이 역시 80년대에 썼던 작품이다. 특이한 설정이었는데 타인의 헛간을 태워버린다는 변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의 심리가 무엇인지 면밀히 관찰하려는 주인공과 이에 반해 자신의 내면을 밝히 드러내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 왜 하필 헛간인가? 그리고 왜 남의 헛간을 태우나? 이 역시 하루키는 헛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와 헛간을 태운다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서 글을 맺는다. 주인공은 주변의 헛간들을 쭉 돌아봤지만 태워진 게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그 남자가 말한 '헛간'이 다른 헛간으로 눈치챘음을 독자에게 짐작게 하며 문자 그대로의 헛간이 아니라며 넌지시 힌트를 준다. 이성(異性)을 말하는 건지 결핍된 무언가를 뜻하는 건지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저 독자만 스스로 답을 내리고 완성시켜야 한다. 나로서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데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루키 글의 특징은 언제나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 그가 얼마나 클래식을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는지는 그의 글을 찾는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 사담이지만 하루는 그가 문장 안에 넣어 놓은 재즈곡이 어떤 분위기를 이끌어내는지 너무 궁금해 알아야 했었다. 그래야 주인공이 바(Bar)에서 어떤 감상에 젖었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궁금해 유튜브에 찾아보면 댓글들이 하나같이 Murakami Haruki를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듀크 엘링턴의 '스타크로스드러버스'라는 곡이 대표적이고 <1Q84> 1권 초반에 등장하는 합주곡도 그렇다. 이렇듯 하루키의 영향력을 다른 매체에서도 쉽게 전할 수 있으니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만하다.
모든 게 편리하고 모든 게 빠른 디지털 시대에서 느끼기 힘든 예전 아날로그식 감성이 이 책에서도 역시 잘 묻어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진가가 드러날 것이고 독자인 나도 시간이 더 흐르면 그 맛을 보게 될 것이다. 헛간 이야기보다 더 어려웠던 후반에 수록된 난쟁이 이야기는 이 리뷰에서 서술하지 않았지만 다음에 재독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남겨보고 싶다. 좋은 책은 반드시 재독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