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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2.18 <개똥벌레> 무라카미 하루키
  2. 2020.02.18 <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3. 2020.02.18 <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마다 문체도 필력도 각양각색이지만 내가 독서에 흥미를 붙인 이후로 접해본 분들 중에서는 하루키만큼 매력적으로 쓰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상실의 시대>, <어둠의 저편>, <1Q8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리뷰할 <개똥벌레> 또한 그렇다.

<개똥벌레>의 전반부는 사실 <상실의 시대>의 초반부를 그대로 가져왔고 중반부턴 단편 소설 모음집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 기숙사에 있었던 어느 남학생의 시시콜콜한 일의 배경을 필두로 지극히 평범한 내용으로 이어져 어찌 보면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하루키의 글이 늘 그렇듯 첫 장부터 흥미롭게 빨려 들어갈 듯이 읽어나갔다.

하루키는 오컬트적 요소가 있는 글을 쓸 때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땐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성의 늪으로 독자를 빠뜨리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거 같다. 기호가 각자 다르므로 누구에게나 호평 일색 일순 없겠지만 내가 그런 글에 유독 몰입이 잘 된다는 이유도 이를 뒷받침한다. 아주 평범한 글감 속에선 친구 사이에서 연애 감정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독자인 나의 옛 모습을 하나둘씩 건드리며 다듬어준다. 그리하여 내가 또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는 듯하다.

이는 서두에 밝혔듯 <상실의 시대>의 전반부만 가지고 말하는 것인데, 전반적으로 주인공들은 말수가 없는 편이고 대체적으로 상황 묘사가 많아 대화의 여백을 채우는 건 독자의 몫이다. 그렇게 읽다 보면 영화 한 편에 푹 빠진듯한 여운으로 헤어 나오기 힘들지만 그 이유가 비단 몰입감 때문만은 아니다. 작중의 죽은 친구에 대한 주인공의 그리움과 또 그 친구의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교차된 그의 모습들이 마치 나에게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묻는 느낌이 커서였다. 하루키는 이때 적절하게 끊었다. 후반부까지 이어질 얘기는 <상실의 시대>를 리뷰할 때 써보겠다.

다음 수록작은 <헛간을 태우다>인데 이 역시 80년대에 썼던 작품이다. 특이한 설정이었는데 타인의 헛간을 태워버린다는 변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의 심리가 무엇인지 면밀히 관찰하려는 주인공과 이에 반해 자신의 내면을 밝히 드러내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 왜 하필 헛간인가? 그리고 왜 남의 헛간을 태우나? 이 역시 하루키는 헛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와 헛간을 태운다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서 글을 맺는다. 주인공은 주변의 헛간들을 쭉 돌아봤지만 태워진 게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그 남자가 말한 '헛간'이 다른 헛간으로 눈치챘음을 독자에게 짐작게 하며 문자 그대로의 헛간이 아니라며 넌지시 힌트를 준다. 이성(異性)을 말하는 건지 결핍된 무언가를 뜻하는 건지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저 독자만 스스로 답을 내리고 완성시켜야 한다. 나로서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데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루키 글의 특징은 언제나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 그가 얼마나 클래식을 좋아하고 재즈를 좋아하는지는 그의 글을 찾는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 사담이지만 하루는 그가 문장 안에 넣어 놓은 재즈곡이 어떤 분위기를 이끌어내는지 너무 궁금해 알아야 했었다. 그래야 주인공이 바(Bar)에서 어떤 감상에 젖었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궁금해 유튜브에 찾아보면 댓글들이 하나같이 Murakami Haruki를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듀크 엘링턴의 '스타크로스드러버스'라는 곡이 대표적이고 <1Q84> 1권 초반에 등장하는 합주곡도 그렇다. 이렇듯 하루키의 영향력을 다른 매체에서도 쉽게 전할 수 있으니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만하다.

모든 게 편리하고 모든 게 빠른 디지털 시대에서 느끼기 힘든 예전 아날로그식 감성이 이 책에서도 역시 잘 묻어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진가가 드러날 것이고 독자인 나도 시간이 더 흐르면 그 맛을 보게 될 것이다. 헛간 이야기보다 더 어려웠던 후반에 수록된 난쟁이 이야기는 이 리뷰에서 서술하지 않았지만 다음에 재독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남겨보고 싶다. 좋은 책은 반드시 재독하게 되어 있다.

 

Posted by 만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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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좋아하게 된 후로 그의 글이라면 믿고 읽기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작가의 팬이 된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팬심에 분별력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애초에 분별력이 나에게 있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정확한 성찰이 된다.)

지금 리뷰를 쓰려 하는 <이상한 도서관>은 2년 전 어느 일요일 낮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기억하고 있는진 모르지만 일요일이란 것까지 정확히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또 기괴한 일러스트가 곳곳에 삽입되어 있던 것도 기억난다. 이 책은 75페이지로 이 역시 지난번 리뷰했던 <버스데이 걸>과 비슷한 수준으로 얇으며 또 복잡하게 뭔가 얽혀있진 않다. 그냥 쭉 읽으면 되는. 근데 얇다고 해서 쉬운 스토리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작가가 다룬 내용들, 이런 걸 오컬트라고 하나? 현실적인 나에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다.

이 내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일반적이지 않은 어느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빌리려 하나 대출 금지된 도서라 하는 수 없이 관내에서 보고 가야 했는데 읽을 수 있는 그곳은 오직 지하 감옥으로 영문도 모르고 직원에게 속은 채 반강제로 끌려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난항을 다룬 것이다.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더니 비현실적으로 끝났다.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작가는 이런 유의 글을 매우 좋아하는데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상한 도서관> 전반을 다 이해하는척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너무 별로다. 창작은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써 내려갈 권이 작가에게 있긴 하나 제발 읽는 독자를 좀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교훈이나 깨달음을 바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즐거움'은 줘야 하는데 작가 혼자서만 즐거우니 이렇게 매번 난감하다.

다만 인상 깊었던 한 군데는 있다. 주인공에게 나 자신과 비슷한 모습이 보였기에 기억에 남는데 탈출이 불가능해 보였던 그 상황에서 주인공이 마음을 다잡고 했던 말

'탈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우선 상대를 방심하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이미 이런 상황은 누구든 많이 겪어봤을거다. 물리적 감금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누군가에게 붙잡힌듯한 기분, 그리고 그걸 벗어나기 위해 기회를 엿봤던 기억.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도서관에 감금되어 벌어지게 되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써 내려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같이 동화되고 싶진 않지만 내가 그 텍스트로부터 좋은 영향력과 상상력만 받아 갔으면 좋겠다.

Posted by 만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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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봐도 책 두께가 상당히 얇아 보인다. 나는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건 맞지만 그를 깊게 이해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할 거 같다. 2년 전에 출간한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너무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 한편의 소설만 가지고 싸잡아서 매도하는 건 아니며 이전부터 조금씩 하루키의 글에 의구심을 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는 건 하루키란 이름이 주는 힘 때문이다. 이를 부인하진 못한다.

오늘 리뷰하는 <버스데이 걸>은 작년 여름쯤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온라인 알라딘 서점에서 본 리뷰는 대부분 비판뿐이었는데 특이한 건 차지하는 비판의 본질은 내용보다 가격에 있다는 것이었다. 61p 짜리(그것도 절반이 일러스트) 책이 13000원이라... 나도 하루키 책을 사서 보는 편이나 이번만큼은 빌려보았다. 한 시간이면 다 읽고 생각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루키가 쓴 책이 아니었다면 과연 사서 읽을 사람이 있었겠냐는 궁금증이 남는 책이다. 이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 명료하다. (물론 독자는 다양하므로 각자 다를수있다.) 스무 살 생일날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 그리고 약 십수 년이 지나 그걸 회상하는 주인공.

스물이 되던 날 직원으로서 노인에게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답례로 소원 딱 한가지를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여 잠시 고민했던 아가씨. 당연히 문장 속에는 소원이 무엇이었는지와 그것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여부는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뜻밖의 소원을 말해 노인을 감탄케 하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성경의 <열왕기상> 3장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으로서 군사력도 구하지 않고 또 수(壽)도 아니하고 부(富)함도 구하지 않고 오직 선악을 분별할 지혜를 달라 하여 창조주의 마음을 감동케한 '솔로몬' 이에 비견될 바는 아니지만 주인공도 보통의 스무 살 아가씨가 비는 소원과 달라 노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여러분들은 스무 살 때 앞을 어떤 인생을 그리고 싶었으며 성인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는가 묻고자 하는 거 같다. 나 역시 되고싶은 인간상이 당연히 존재했고 서른이 넘는 지금도 존재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가진 생각과 천양지차이다. 이를 피력하자는건 이 리뷰에서 할 얘긴 못되는거 같다. 그러고나서 빠르게 글을 끝맺는데 다음 장에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은 스무 살 생일을 또렷이 기억한다며 '작가 후기'에 일러놓았다.

생일을 중요시하지 않는 나는 스무 살 생일 때 뭘 했는지 당최 기억나질 않는다. 솔직히 아직도 태어난 날이 각자에게 무엇이 그리도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생일은 주변인들로부터 선물을 당연스럽게 받아도 괜찮다고 다 같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전통 깊은 날?

물론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고 뭘 받았는지도 지금도 기억나는 게 몇 개 있지만 나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스무 살 그땐 정황상 내가 소속된 열심 내던 동아리의 선배와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던 거 같다. 그뿐이다. 생일과 소원을 접목시킨 글감은 흥미롭고 좋았지만 너무 빨리 마무리되었다. 단편 모음집에 한 에피소드만 빼놓은듯한 내 엄지보다 얇은 책으로 비싼 값을 받고자 한 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래서 첫 느낌은 중요한가 보다.

<상실의 시대>에서 받았던 여운이 내 안에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그거 하나 믿고 하루키를 매번 찾는 거 같다.책을 고르는 것도 극장에서 영화 고르는 것과 같아서 실패할 때가 있다. 늘 깨달음과 즐거움을 주진 않지만 분명 지금 읽은 문장들이 어딘가 내 안에 남아 언젠간 지혜로 발현될 것이라 근거 없는 믿음을 가져보며 책을 덮는다.

 

Posted by 만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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