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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18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왔을 때 큰맘 먹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구매했다. 비교적 저렴하게 할인받을 수 있어 혹했지만 그래도 선뜻 결제하기는 여러 가지로 망설여졌다. 가격도 문제지만 200권이 넘다 보니 책장도 사야 하는 데다 직장과 저녁 모임 및 활동을 병행하면서 다 읽을 수 있을까란 고민이 먼저 들어서이다. 그래도 있으면 언젠간 볼 거란 믿음으로 시원하게 질러버렸다. 스무 살 초였다면 맘 놓고 읽었을 텐데. 직장인이다 보니 읽을 시간이 적... 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핑계다. 시간이 넘쳐야만 책을 읽는다면 아마 영원히 한 권도 제대로 못 읽을 거다. 우린 바쁘다 하면서도 놀기도 잘 놀고 친구도 만나고 할거 다하고 있다. 일단 사놓으면 본전 생각나서라도 읽겠지.

전집을 사서 처음으로 꺼내 읽었던 게 <노인과 바다>였다. 50년대에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알려진 헤밍웨이의 작품. 아마 못 들어본 이는 없을 것이다. 영화로도 몇 차례 만들어졌으나 난 아직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나도 그렇고 누구나 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 이미 읽기도 전에 소설 속에서 무얼 강조하는지 다들 알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노인과 바다>는 약 팔십 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 산티아고와 그를 돕는 소년과의 고기잡이 이야기로 전개되며 내용의 대부분은 산티아고 혼자서 물고기와 사투를 겪는 자아와 마주하면서 역경을 이겨나가는 내용이다. 이것이 전부이며 구성도 단순하다.

역시나 책은 얇지만 그 단순함 속에 어린 마음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삶의 고단함과 진한 감동이 있다. 아직은 어린 나로선 그 주인공의 마음을 다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 책 전반의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쉽지만 주인공 산티아고가 팔십 일간 고기를 잡지 못했음에도 생계를 위해 다른 업을 찾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어르신의 마음이 현대인의 시각으론 답답하게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작중 초반에 소년과 노인의 대화 내용이 사뭇 정겹다. 노인 못지않게 소년 또한 어른스럽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기를 잡지 못한 암울한 상황을 반대로 따스하게 만들어주고 독자의 마음을 풀어주는듯하다. 그러나 소년은 부모님에 의해 산티아고를 잠시 떠난다. 이는 본격적으로 산티아고의 모습을 조명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인듯하다. 혼자 남겨진 노인은 이따금씩 소년을 그리워하지만 이내 독백으로 마음을 다 잡고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으며 본업에 집중한다.

혼자 힘으로 잡을 거란 믿음으로 열심히 싸우는 산티아고.

85가 재수 좋은 숫자라고 유머 섞인 말을 하는 걸 보니 84일간은 못 잡았지만 85일째 날엔 꼭 잡겠단 얘기인가 보다.

상어와 죽음의 결투를 하고 난 이후 배에서 내려 아무 일 없었단 듯 곤히 잠드는데 이때 소년은 노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숨소리를 확인한 후 손을 보더니 엉엉 울고 만다. 잠에서 깬 노인은 소년이 주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판잣집에서 잠이 들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책 속에서 지혜를 빌릴 수 없거나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다면 그 책은 죽은 책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헤밍웨이는 단순히 어부의 일상을 알리려 펜을 든 건 아니며

인간은 파멸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숭고함 위에 육체의 어떤 것보다는 좌절하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승산 없는 싸움을 피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시키려 하지 않을 것인데 반하여 세상은 매번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때론 10을 투자해 1을 얻고 1을 투자해 10을 얻기도 한다. 먼저는 목표를 설정하고 마음을 다하되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어부의 모습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헤밍웨이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직도 팔십 일간 수확을 얻지 못했단 건 이성적인 나로선 쉽사리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새삼스럽게 나에게도 소년과 같은 동역자가 많으면 좋겠다. 힘든 일을 할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 신뢰를 주고받는 사람, 불완전했던 노인에게는 힘들 때 기쁠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소년이 있듯이.

 

Posted by 만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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