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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쉰 적이 있었다. 그때 혼자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했는데 하루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중 단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내 호기심이 생겼다. 예전에 3일간 단식을 두 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억지로 해서 효과가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고 별 좋았던 기분이 없어 따로 언급할 건 없고 타의가 아닌 100% 자의로 단식을 해보기로 했다. 목표는 4일이었다. 3일은 해봤으니 너무 쉬울 것 같고 5일째되는 날은 활동을 많이 해야 해서 무리가 갈 것 같았다. 다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무리가 가면 안 되니깐. 단식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었다. 남들은 단식할 때 감잎 차를 먹어라 하던데 필자는 그런 건 일절 입에 안 댔다. 오직 진행 중엔 물 외에 어떠한 것도 먹지 않기로 했다.

단식 전날에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터널>을 본 걸로 기억한다. (3년 전에 개봉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서 죽을 먹고 본격적으로 돌입.

사전에 얻었던 지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그밀'이란 알약을 먹는 것인데 이건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단식 기간에는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니 장의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노폐물 배출이 원활하지 못해 몸속에 독소가 쌓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단식을 안 하는만 못하니 마그밀을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론 잘 먹은 것 같긴 하다. 그리고 회충약을 먹어야 한다. 만약 회충이 있다면 몸속에서 음식물이 이제 안 들어오니 장기를 갉아먹는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었다.

단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서 일까. 단식 기간 4일 동안 배가 고파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끼니 때를 놓치면 배고파 예민해지는데 단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마음의 대비가 되어서 그런가 꼬르륵 소리도 없었고 초연해졌다. 뇌가 먹기를 포기했나?

첫날엔 정말 편했다. 그리고 체감적으로 시간이 많이 남는다. 하루에 3끼를 먹었으면 그 먹는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는 데다 먹고 난후 휴식을 따로 취할 필요도 없으니 하루에 3시간 정도가 덤으로 주어진 기분이다. 둘째 날도 힘들지 않았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이 많았나 보다. 에너지를 갈구해야 하는데 딱히 그런 기색도 없었다.

셋째 날에 바닥에 앉아야 할 일이 생겼는데 좌식은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간다. 정상적으로 생활을 할 때 좌식도 허리가 아픈데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맨바닥에 앉았더니 허리가 무척 힘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바닥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는 자세가 얼마나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지를. 그제서야 내가 굶고 있다는 자각이 느껴졌고 슬슬 불안감이 들었다. 역시나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어느 분이 나에게 반갑다며 토마토주스를 건네주셨는데 마시는 척만 하고 그분이 안 볼 때 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어느 의사가 말하길 하루 30kcal 이하로 섭취하면 그것도 단식이라고 정의를 내렸기에 토마토 주스 한잔 정도야 상관없겠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식을 하며 얻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몸이 가뿐해진다는 것과 명현 현상을 겪을 수 있다는데 명현 현상은 조금 논란이 있다. 아무래도 장이 비워지니 몸이 가뿐해진다는 건 당연한 일일 테고 명현 현상은 무엇이냐면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지 않음으로 소화 기관이 평생 얻지 못했던 휴가를 만끽함으로써 소화 흡수 작용이 쉬는 만큼 몸속에서 각종 정화 기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스스로 자가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데 현대인들은 늘 섭취를 과다하게 하니 소화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치유하는데 쓰고 있질 못하다는 것이다.

이 능력은 야생의 짐승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악어나 맹수가 아플 때는 아무리 사육사가 입에다 생닭을 넣어주려 해도 다 토해내고 일절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플 때는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소화 흡수하는 작용을 중단하듯 인간도 중단하게 되면 몸의 아픈 부분들이 어디였는지 알게 되고 치유한다면서 여러 인체의 반응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중에 하나가 가슴 부근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타난다고 한다. 독소가 빠지면서 나오는 현상이라던데 필자는 3일째 되는 날 샤워하면서 발견했다. '이게 바로 그건가?' 싶어서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의학적으로 의사와 상담해서 결론 내린 건 아니라 독소가 나가면서 생긴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머리가 정말 맑아졌다. 배가 고파서 뇌도 같이 쉬는지 잡생각이 안 났고 머리가 굉장히 맑아졌다. 그리고 물이 무척 맛있다. 조미료에서 해방이 되어 혀가 비문명 원시 상태로 돌아간 듯하다. 뭔가 뿌듯했다.

굶게 되면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한다. 역시 독소가 빠져나가면서 그렇다고 하는데 원래 자기가 자기 냄새를 못 맡아서 이건 모르겠고 기억도 안 난다.

3일째 저녁이 되는 날, 계단을 오르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심장 박동이 유독 심하게 빨라졌다. 어르신들이 잘 못 올라가듯 필자 역시 계단 올라갈 때 벽 짚고 올라가야 했다. 숨이 찬다기보단 굉장히 중노동을 버겁게 하고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위험했는지는 3년이 지난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배가 고파 꼬르륵하거나 음식이 먹고 싶어 입에서 침이 나온다든지 그런 건 역시 전혀 없었다. 다만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어졌다. 필자는 매운 걸 못 먹는데 갑자기 매운 것이 먹고 싶어졌다. 그러나 단식을 하면 위장이 쪼그라들고 약해져 매운 음식은 절대 섭취해선 안된다. 단식 후 보식(단식 일수만큼 죽을 먹어 위장을 원상태로 회복해야 하는 것)을 할 동안에도 매운 음식은 물론이고 기름진 것도 안된다.

단식이 끝나면 꼭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았다. 식욕은 아닌데 내 속에 부족한 것을 채우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도 식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음식은 생각도 안 났으니.

마지막 4일째 되는 날 저녁 너무 지겨웠다. 어차피 지금 단식을 끝내나 내일 아침에 끝내나 똑같을 것 같았다.

단식을 종료하고 포카리스웨트를 꺼냈다. 침대에 앉아 포카리스웨트 두 모금 정도를 마셨다. 오랜만에 혀에 자극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만족감과 허무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사실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많이 들었던 참이었기에.

포카리를 마시니 신기한 현상이 생겼다. 그 현상을 단방에 알아차린 건 아니지만 문득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던 것이다!!!!!!!!!!

처음엔 몰랐다. 어느 순간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자각한 순간 든 생각은 뇌에서 기분이 좋다며 노래 한곡 뽑으라고 지시한 것 같았다. 그리고 허벅지에 힘이 들어감이 바로 전해졌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정확한 글귀는 생각이 안 나지만 대충 이렇다.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과잉 섭취하며 살고 있기에 사실 무엇을 먹어도 음식의 효능을 쉽게 느끼길 힘들다. 그러니 음식이 주는 에너지와 효능을 정말 제대로 느끼려면 궁핍한 상태가 되었을 때가 되어야 한다'

포카리를 마시니깐 노래도 나오고 허벅지에도 힘이 나 방에서 갑자기 서있을 수 있게 되고 걷고 싶어졌다.

이 포카리 한 잔으로 최대의 효율을 낸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평소에 얼마나 많이 먹었단 뜻인가.. 적게 먹어도 우리 몸은 충분히 에너지 효율을 낼 수 있었는데....

그리고 다음 날인 금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처음엔 죽을 만들어 먹고 토요일부턴 미역국도 같이 섭취했다.

그런데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일요일 점심, 친구와 만나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배가 아파졌다. 무리를 했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어리석었다. 원래 금식으로 굶는 기간보다 보식으로 위를 다시 원위치로 돌이키기가 더 어려운 것인데 이걸 명심했어야 했다.

단식을 한 후 지금까지 바뀐 것이 하나 있다. 청양고추를 포함한 매운 걸 일절 못 먹던 내가 매운 음식을 즐기게 되었다. 이 사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안 믿긴다는 듯 신기하게 바라보신다. 무엇을 얻었는지는 딱히 결론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짧았던 4일이지만 좀 적게 먹어도 인체는 얼마든지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분명 필자는 배는 안 고팠다고 했지만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못 느끼는 스트레스는 느꼈다. 사람은 배고파서 먹는 것도 있지만 맛을 느끼는 행복을 누리는 즐거움도 있기에.

​다음에 단식을 하게 되면 5일 도전이다 그때는..

3줄 요약

1. 건강을 위해 첫날 회충약과 마그밀 알약을 먹고 물만 마시며 4일간 단식을 함.

2. 배는 안고팠지만 머리가 무척 맑아졌고 몸도 가뿐해지고 명현 반응으로 두드러기도 났다.

3. 포카리 한 잔으로 기분 확 좋아지고 힘이 나며 말끔하게 금식 종료.

 

는 페이크고 사실은

1줄 요약

굶는 게 금식이 아니다. 굶고 나서 죽으로 보식까지 마치는 것이 금식의 완성이다.

Posted by 만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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